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나미 153 (문단 편집) == 역사 == [[송삼석]] 모나미 전 회장은 1962년 4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산업박람회에 참가했다. 당시에는 모나미로 회사 이름을 바꾸기 전이라 광신화학공업이었는데 당시 일본의 한 문구 유통업체와 공동으로 박람회에 참가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송삼석은 일본 유통업체 측 과장이 주머니에서 [[만년필]]도 아닌 뭔가를 꺼내 서류를 작성하는 생소한 모습을 보았다. 바로 볼펜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만년필, 잉크펜, 연필 등을 썼지 볼펜은 판매되지 않았는데 그는 볼펜을 보고 '저걸 우리가 생산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송삼석은 그 과장으로부터 볼펜 한자루를 얻어 자기 회사 직원들과 이리저리 뜯어본 결과 핵심은 플라스틱 관에 농축 잉크를 집어넣는 기술과 그 잉크를 조금씩 흘러나오게 하는 볼펜팁 기술 이 두가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어떻게든 볼펜을 자신이 생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그 일본 문구 유통업체 과장의 한국 내 제품 세일즈를 적극 도와주었다.[* 당시 유통업체 과장은 한국에 기계식 계산기 12대를 판매하기 위해 왔는데 송삼석이 판매처를 알선해 주었다. 당시에는 전자식 계산기가 등장하기 전이라 기계식 계산기라고 책상에 타자기처럼 올려놓아 쓰는 커다란 금속 계산기가 존재했는데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열 자리 내외 숫자의 덧셈, 곱셈, 뺄셈, 나눗셈 등이 가능했다.]그리고 해당 일본 유통업체 과장은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송삼석에게 오토(AUTO)라는 볼펜 제조업체[* 현재는 오토([[OHTO]])로 사명을 변경했다. AUTO는 너무 뻔해서 그랬다는 얘기가 있다.]를 소개시켜 주었다. 일본으로 날아간 송삼석은 오토사의 전무를 만나 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외국산 제품의 수입제한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오토사 입장에서도 어차피 한국 시장에 완제품으로 진출 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광신화학공업에 자사의 볼펜 재료를 파는 것만으로도 손해볼 것 없는 장사였고, 오토사 측은 광신화학공업 측에 유성잉크 제조기술만 알려주는 대신 볼펜팁이나 볼 등 볼펜 재료는 자기회사에서 수입해서 쓰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렇게 협상을 마치고 얼마 뒤 오토사 측에서 유성잉크 기술자 한 명이 날아왔는데, 송삼석과 광신화학공업의 생산부장, 연구과장은 그 일본인 기술자가 체류하는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거의 붙어 지내면서 최대한 많은 노하우를 얻기 위해 묻고 또 물었다고 한다. 그렇게 유성잉크 기술을 배운 후에도 광신화학공업의 연구원들이 밤낮으로 제작을 시도하기를 수천번의 실패 끝에 1963년 5월 1일 드디어 첫 [[볼펜]]이 탄생했다. 모나미 153 볼펜은 당시 15원으로 출시됐는데[* 1960년대 공무원 월급이 1만원대였으며, 15원은 당시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나 [[신문]] 1부 값과 비슷한 정도였다.] 출시만 하면 대박을 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처음에는 잘 팔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워낙 만년필이나 펜과 잉크병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바꾸기 위해 영업직원들이 153 볼펜을 가지고 다니며 [[관공서]]나 [[은행]] 등에 볼펜의 편리함과 번지지 않음을 홍보하며 한번 써보라고 뿌리고 다녔다. 어떤 영업사원은 은행에서 옆사람이 잉크펜으로 청구서를 작성하자 실수인척 일부러 물을 엎질러 번지게 하고는 153 볼펜을 꺼내 대신 써주는 식으로 홍보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적극적인 홍보 덕분에 판매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모나미'라는 상표의 인지도가 워낙 높아져서 모나미 153 볼펜 발매 4년 후인 1967년에는 아예 회사이름을 광신화학공업에서 모나미 화학 공업으로 바꾸어버렸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오토사에서 볼펜 부품을 수입해서 썼지만 나중에는 [[스위스]]에서 볼펜팁 제조 기계도 사오고 기술개발도 계속하여 볼펜팁과 볼 등의 부품들도 모두 국산화에 성공했다.[* 볼펜 볼은 쇳조각들이 바람을 타고 서로 부딪히면서 깎이는 방식의 기술을 개발해서 국산화했다. [[https://youtu.be/73BmYOME-xc?si=hlwJUo1MUe4reYwI&t=1814|#]]] 153은 온갖 필기구가 범람하게 된 2000년대 이후에도 훌륭한 가성비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여전히 꾸준한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당시 모나미 153의 대 히트 직후에 많은 회사들이 따라서 필기구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몇몇 회사들은 모나미 153의 인지도를 이용할 생각으로 몬나니(Monnani), 모라니(Morani) 등의 짝퉁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보편적으로 짝퉁 상품들이 흔히 그렇듯이 이 짝퉁 153들도 품질이 조악해 내구성이 심히 좋지 않았는데, 당시만 해도 이런 짝퉁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을 때라 낮은 품질에 대한 비판이 애꿎은 모나미 측을 향하게 된다. 결국 이를 참다 못한 모나미 측에서는... || [[파일:모나미 광고1.gif|width=100%]] || [[파일:모나미 광고2.jpg|width=100%]] || 제대로 써지지 않는 짝퉁 제품에 '''"화가 나서 밟아 버렸죠!"'''라는 1960년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기 그지없는 광고 문구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 광고를 계기로 '''"품질에서만큼은 모나미를 따를 볼펜이 없다"'''는 이미지를 굳히게 된다. 이런 광고 이외에도 당시의 모나미는 활발하게 여러 광고를 게재하고 자체적으로 짝퉁 단속반을 운영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였고, 현재까지도 한국에서 볼펜이라고 하면 이 볼펜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일 정도의 인지도를 얻었다. 해외 수출 또한 호조였다. 모나미의 라이벌이었던 [[마이크로(문구회사)|마이크로]]와 [[모닝글로리(기업)|모닝글로리]], [[바른손]] 등등의 굴지의 문구용품 회사들이 1999년 IMF 당시 부도를 면치 못했을때 모나미는 해외 수출을 통해 91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래 저래 모나미를 지탱하는 밥줄인 상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